퇴마를 다룬 서구 영화에서 사제는 대체로 늦게 등장한다. 그 앞자리는 의사와 검사 결과가 차지한다. 아이는 병원에 실려 가고, 촬영을 하고, 신경과와 정신과를 거치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사제는 그다음에 온다.
이 순서는 연출의 취향이 아니다. 교회 문서에 적혀 있는 절차다.
예식 전에 와야 하는 것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3항은 구마를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적이고 권위 있게 청하는 기도로 규정한다. 같은 항은 대구마를 사제만, 그것도 주교의 허가를 받아 집전할 수 있다고 못 박는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질병, 특히 정신 질환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그것을 다루는 일은 의학의 몫이다. 그러므로 구마를 하기 전에 상대하는 것이 악의 현존인지 질병인지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교회법 1172조는 더 건조하다. 교구장의 특별하고 명시적인 허가를 얻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들린 이에게 합법적으로 구마를 행할 수 없다. 허가는 경건과 지식과 신중함과 생활의 성실성을 갖춘 사제에게만 준다.
미국 주교회의가 예식서 관련 안내로 공개한 문답은 실무 순서를 더 구체적으로 적는다. 의학과 심리와 정신의학 검사를 포함한 철저한 검사를 거친 뒤에야 그 사람을 구마 사제에게 보내 최종 판단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이 들렸다고 스스로 말하더라도 실제로 그런지 판정하는 주체는 교회다. 같은 문답은 구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영화와 방송의 과장으로 형성된 면이 크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정리하면 구마는 심사를 통과해야 시작되는 절차다. 의식보다 자격 확인이 먼저 온다.
그래서 1막이 심사가 된다
「엑소시스트」(1973)는 이 순서를 그대로 밟는다. 미국영화연구소 목록에 따르면 이 영화는 윌리엄 피터 블래티가 1949년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에서 있었던 열네 살 소년의 구마 사례를 바탕으로 쓴 1971년 소설을 각본으로 옮긴 것이다. 감독은 윌리엄 프리드킨이다.
영화의 앞부분은 퇴마가 아니라 검사로 채워진다. 관객이 그 시간 동안 보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의료 절차다. 이것을 규정이 만든 순서로 읽을 수는 있지만, 이 작품이 교회 문서를 참조해 그렇게 구성했다는 제작 자료는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되는 것은 두 순서가 같다는 사실까지다.
순서가 같다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에는 결과가 생긴다. 심사가 앞에 오면 영화의 1막은 질문 하나에 매달린다. 이게 진짜인가. 관객은 인물과 함께 판정을 기다리는 자리에 놓이고, 의심이 걷히는 순간이 곧 이야기의 문턱이 된다.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절차
무속의 굿은 다른 자리에서 출발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굿을 무당이 신을 청하고 환대하고 환송하는 과정으로 구성된 무속의례라고 정의한다. 진행은 청신, 대접과 기원, 송신의 세 단계로 공통된다.
큰 굿 하나는 열두 거리에서 서른 거리에 이르는 작은 제차로 이루어지고, 각 거리가 다시 같은 세 단계를 반복한다. 앞쪽에는 굿당을 정화하고 신을 청하는 거리가 놓이고, 가운데에서 주요 신을 대접하고 기원하며, 맨 마지막에 잡귀를 풀어 먹인다.
여기에는 감별 단계가 없다. 시작은 자격 심사가 아니라 초대다. 무엇을 상대하는지 먼저 판정하고 들어가는 구조가 아니라, 부르고 대접하고 돌려보내는 구조다.
대신 내력을 판다
감별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확인해야 하는 대상이 다르다.
같은 사전의 「무속」 항목은 조선시대 사령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이렇게 적는다. 단순한 위령이 아니라 죽음의 살을 푸는 살풀이를 해서 망령을 저승으로 보내 후환이 없도록 하는 데 있었다. 이어지는 문장이 이유를 밝힌다. 병으로 죽거나 억울하게 한을 품고 죽은 원령들이 남에게 화를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원귀에는 발생 조건이 있다는 뜻이다. 조건이 있으면 그 조건을 알아야 풀 수 있다. 죽은 이를 다루는 굿이 상가와 물과 묘와 마을로 나뉘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오컬트 영화의 앞부분이 병원 대신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은 이 지점에서 읽을 수 있다. 「파묘」(2024)는 묘를 파고, 「곡성」(2016)은 마을을 뒤진다. 진단서를 기다리는 대신 과거를 캐는 시간이 1막을 차지한다. 다만 이것은 절차의 성격과 영화의 구성을 나란히 놓고 내리는 관찰이지, 감독들이 그 절차를 참조했다고 밝힌 자료를 근거로 한 말이 아니다.
이 차이는 결말까지 이어진다. 사건이 끝나고 무엇이 남는지를 세는 방식은 범죄 영화의 결말을 다룬 글에서 따로 정리했다. 퇴마물에서는 그 계산이 시작 지점에서 이미 결정된다.
그런데 국가로 나누면 틀린다
여기까지 읽으면 한국 영화는 굿의 문법을, 서구 영화는 구마의 문법을 따른다는 정리가 나올 것 같다. 그 정리는 곧바로 깨진다.
「검은 사제들」(2015, 장재현)에서 의식을 집전하는 것은 무당이 아니라 신부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실린 소개는 교통사고 이후 의문의 증상에 시달리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김 신부와 최 부제가 퇴마 의식을 진행하는 이야기라고 적는다. 한국에서 만든 한국 영화가 가톨릭 사제를 세운다.
「곡성」도 도식을 흔든다. 이 영화에는 굿이 나오지만, 원인을 캐는 작업이 끝내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무엇을 상대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판단 자체가 무너진다.
한국 오컬트가 최근에 생긴 흐름도 아니다.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는 2021년 기획전 프로그램 노트에서 한국에서 오컬트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이 「너 또한 별이 되어」(1975)와 「영노」(1976)부터 시작됐다고 정리하면서, 이 시기가 「엑소시스트」(1973)의 세계적 흥행 이후 장르가 형성되던 때였다고 적는다. 같은 글은 오컬트라는 말이 감춰진 것을 뜻하는 라틴어 오쿨투스에서 왔다고 밝힌다.
그러니 나누는 선은 국경이 아니다. 어느 의식의 문법을 빌려 왔는가가 선이다. 한국적 정서나 서구적 세계관 같은 큰 말로 묶으면 「검은 사제들」 한 편에 바로 걸린다.
남는 것
이 글은 두 의식의 규정 문서와 백과사전 항목, 그리고 몇 편의 영화 정보를 근거로 삼았다. 각 영화가 왜 그런 구성을 골랐는지는 만든 사람들이 밝힌 자료를 확인하지 못해 비워뒀다. 의식의 실제 효험이나 두 종교 전통의 우열은 이 글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고, 판단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하나는 남는다. 퇴마물을 볼 때 우리는 대개 마지막 대결을 기억하지만, 그 대결의 모양은 의식이 어떻게 시작하느냐에서 이미 갈린다. 심사로 여는 절차는 의심을 걷어내는 1막을 만들고, 초대로 여는 절차는 내력을 캐는 1막을 만든다.
확인한 자료
-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3항(교황청). 구마의 정의, 대구마의 집전 조건, 예식 전 질병 감별 요구를 확인했다.
- 교회법전 1172조(교황청). 교구장의 명시적 허가와 집전 자격 요건을 확인했다.
- 미국 주교회의 「Exorcism」 문답. 의학·심리·정신의학 검사를 포함한 감별 절차와 판정 주체를 확인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굿」과 「무속」(한국학중앙연구원). 굿의 정의와 3단 구성, 거리 수, 사령제와 살풀이의 목적, 원령에 관한 서술을 확인했다. 출처 표기 규정에 따라 항목명을 밝힌다.
-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오컬트 필름 바이블」 프로그램 노트(2021). 오컬트의 어원과 한국 오컬트 초기작, 장르 형성 시기를 확인했다.
- 미국영화연구소 목록 「The Exorcist」. 원작 소설과 1949년 사례, 감독과 개봉 정보를 확인했다.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검은 사제들」·「곡성」·「파묘」 항목. 감독, 개봉 연도, 작품 소개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