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미생」은 두 번 영상이 됐다. 2013년 5월, 다음은 이 웹툰을 모바일 단편 영화 6편으로 만들어 자사 앱에서 1주 간격으로 공개했다. 이듬해 10월 17일, tvN은 같은 웹툰을 드라마로 만들어 12월 20일까지 방송했다. 원작은 하나이고 작가도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두 영상은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원작이 같은데 결과가 갈렸다면, 갈라놓은 것은 원작이 아니다.
「미생」은 바둑 프로기사를 꿈꾸던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하고 회사에 비정규직으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2012년 1월 포털 다음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이야기 자체는 두 영상판 모두에서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그 이야기를 어떤 그릇에 담느냐였다.
원작이 대신 정해주지 않는 값
웹툰을 읽을 때 한 칸에 얼마나 머물지는 읽는 사람이 정한다. 표정 하나를 3초 보든 30초 보든 작품은 기다린다. 영상에서는 그 시간을 만드는 쪽이 정해야 한다. 몇 초를 줄지, 그동안 카메라를 움직일지, 그 위에 소리를 얹을지가 전부 새 결정이다.
대사도 마찬가지다. 웹툰의 말풍선은 눈이 지나가는 만큼만 시간을 쓰지만, 배우가 그 문장을 입으로 말하면 길이가 고정된다. 같은 대사가 화면에서는 다른 무게를 갖는다.
이건 원작을 아무리 꼼꼼히 봐도 원작 안에 답이 없는 값이다. 원작에 그려진 것은 무엇을 보여줄지이고, 얼마나 오래 보여줄지는 그려져 있지 않다. 옮긴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 자리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6편으로 갈 때와 두 달로 갈 때
「미생」의 두 영상판은 이 값을 정반대 방향으로 정했다.
김은영이 『미디어, 젠더 & 문화』에 실은 연구는 같은 웹툰이 웹드라마와 TV드라마로 옮겨진 두 경우를 나란히 분석했다. 초록에 정리된 결과는 이렇다. 작은 화면과 이동성, 짧은 상영시간을 조건으로 가진 웹드라마 쪽에서는 에피소드가 특정한 것으로 좁혀지고 장르가 하나로 정리됐으며, 인물 관계가 단순해지고 시공간이 한정됐다. 고화질 대형 화면과 시리즈 형식을 조건으로 가진 TV드라마 쪽에서는 반대로 에피소드가 확대되고 장르가 복합적으로 갔으며, 인물 설정이 명확해지고 관계가 복잡해졌고 시공간이 충실히 재현됐다.
같은 원작에서 하나는 줄이는 쪽으로, 다른 하나는 늘리는 쪽으로 갔다. 원작 해석이 정반대여서가 아니다. 6편짜리 모바일 단편과 두 달을 채우는 시리즈는 애초에 담아야 할 양이 다르다. 화면이 커지면 배경은 그냥 배경으로 남지 못한다. 벽지 하나, 책상 위치 하나가 인물의 처지를 말하기 시작한다. 공간이 계급을 설명하는 영화들에서는 그것이 연출의 무기였지만, 각색하는 쪽에서는 먼저 채워야 할 빈칸이다. 회차가 늘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늘어난 시간은 저절로 채워지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그릇의 크기가 요구한 값으로 읽을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원작에 없는 사람을 만든다는 것
정혜경이 『열린정신 인문학연구』에 실은 연구는 웹툰과 드라마의 서사 방식을 비교했다. 초록에 따르면 드라마 「미생」은 웹툰에 없는 안타고니스트를 설정해 선악의 대립을 만들었고, 장그래의 입사동기들 이야기를 확장했다. 웹툰의 선형적인 서사구조를 액자구조로 바꾸고 길 모티프를 들여왔다는 서술도 있다. 이 글은 두 논문 모두 초록만 확인했으므로 그 이상의 분석은 옮기지 않는다.
연출을 맡은 김원석은 종영 무렵 인터뷰에서 드라마가 웹툰과 다른 점을 극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자신은 코미디를 하고 싶었고, 원작에 없이 추가된 에피소드는 대부분 코미디 에피소드라고 밝혔다.
앞 절의 조건과 이어서 읽으면, 회차가 늘어난 자리에 인물과 갈등이 더 필요해진 상황으로 볼 수는 있다. 다만 이것은 두 자료를 나란히 놓고 내리는 해석이지 확인된 인과가 아니다.
안타고니스트를 왜 새로 세웠는지에 대해서는 제작진이 밝힌 자료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유는 비워둔다. 확인되는 것은 사실 쪽이다. 원작에 없던 인물과 없던 구조와 없던 에피소드가 화면에는 있었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원작자가 원작 밖을 썼다
2013년의 단편 6편은 원작 충실도라는 잣대를 더 곤란하게 만든다.
다음이 배포한 자료를 보면, 이 6편은 원작자 윤태호가 등장인물 여섯 명의 프리퀄을 직접 구성한 것이다. 자료는 그 내용을 본편에 모두 쓰지 못했던 주인공들의 과거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연출은 장편 데뷔 전의 감독 두 사람이 맡았고, 여섯 편은 인물별로 한 편씩 만들어져 모바일 앱을 통해 1주일 간격으로 공개됐다.
원작자가 원작에 없는 이야기를 쓴 것이다. 배신도 아니고 타협도 아니다. 인물 한 명당 짧은 영화 한 편이라는 형식이 주어졌고, 그 형식이 요구하는 분량은 웹툰 본편 어디에도 준비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 썼다.
원작에 없는 것이 화면에 생겼을 때 그것을 곧바로 훼손으로 읽는 습관은 여기서 한 번 걸린다. 원작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는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매체가 요구한 빈칸일 수도 있고, 만드는 쪽의 취향일 수도 있다. 「미생」의 경우 코미디 에피소드는 연출자가 자기 취향이라고 말했고, 프리퀄의 과거 이야기는 형식이 만든 빈칸이었다.
그러면 원작 없는 각본은 더 자유로운가
각색은 제약이고 오리지널 각본은 자유라는 대비는 절반만 맞다. 정확히 말하면 둘의 차이는 자유도가 아니라 참조점이다.
각색하는 쪽은 이미 정해진 인물과 사건을 앞에 두고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지 결정한다. 오리지널 각본을 쓰는 쪽은 그 참조점 없이 같은 항목을 처음부터 정한다. 한 장면에 몇 초를 줄지, 그 인물이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이 회차를 무엇으로 채울지는 양쪽 모두 정해야 한다. 결정의 개수는 줄지 않는다. 줄어드는 것은 백지의 면적뿐이다.
업계가 각색을 어떻게 보는지도 참고가 된다. 이승형과 나윤빈이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지』에 실은 연구는 웹툰 영상화 실무자 22명을 인터뷰했다. 초록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영상화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낮은 협업성을 꼽았고, 그 원인을 전문 인력 부족과 의사소통 부족으로 봤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 중 하나가 각색 전문 작가의 양성이다. 옮기는 일에 별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말은, 그 일이 옮기는 일이 아니라는 뜻에 가깝다.
이 글이 다룬 것은 웹툰 한 편과 그 영상판 두 개다. 다른 작품에서는 다른 값이 나올 수 있고, 각 선택의 이유 중 상당 부분은 만든 사람들이 말하지 않아 여기서도 비워뒀다.
그래도 한 가지는 정리된다. 각색이라는 말은 옮긴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의 대부분은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정하는 것이다.
확인한 자료
- 다음커뮤니케이션 보도자료 「인기 웹툰 ‘미생’ 프리퀄, 단편 영화로 제작」(2013년 5월 배포). 프리퀄 6편의 제작 방식, 공개 일정, 원작자의 직접 참여를 확인했다.
- tvN 「미생」 공식 페이지. 방송 기간(2014년 10월 17일 ~ 12월 20일)과 작품 소개를 확인했다.
- 카카오웹툰 「미생」. 원작자와 작품 정보를 확인했다.
- 김은영, 「웹툰 <미생>의 재매개 과정에서 나타난 디지털 서사의 변주」, 『미디어, 젠더 & 문화』 31권 2호(2016). 이 글은 초록만 확인했다.
- 정혜경, 「웹툰 「미생」과 드라마 <미생>의 서사담론 분석을 통한 세계관 비교」,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23권 2호(2022). 이 글은 초록만 확인했다.
- 이승형·나윤빈, 「웹툰의 매체변환 과정에서의 협업체계 연구」,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지』 19권 4호(2019). 이 글은 초록만 확인했다.
- 김원석 연출가의 발언은 2014년 12월 종영 무렵의 공동 인터뷰 보도에서 확인했다. 발언 부분만 인용했고 기자의 해설은 사용하지 않았다.